미국 애들은
생각도 영어로 하겠지
얼마나 좋을까
씨팔     
- 원태연


오죽하면.

온국민의 영어에 대한 집착은 거의 광기에 이른 것 같습니다. 일단 방송 내용에 기함을 했고 이어지는 트랙백을 읽다보니 이것저것 생각이 더해져서 한번 영어 조기 교육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볼까합니다. 저는 영어 조기 교육에 반대하는 입장이고 모든 사례를 들을 때 마다 뭘 그렇게 까지... 하는 생각밖에 안 들어서요...


조기 교육을 시키는 이유중에 가장 큰 것이 '발음'이라고 생각됩니다. 온 국민이 영어에, 특히 영어 발음이라는 강박에 씌어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일찍 시작하는 것이 어떤 이득이 있을 지 의문스럽습니다. 일반적으로 태어난 아기는 모든 언어의 발음에 열려 있지만, 자라면서 점점 모국어의 발음에 익숙해진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이때에 익숙해 진다는 것은 '발음'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인식'한다는 의미 입니다. 이때 '자라면서 점점'의 시기가 문제가 되는데요, 극단적인 연구 결과의 경우 생후 1,2년이면 이 적응이 완료된다는 설도 있습니다. 즉 (이 연구 결과를 따르자면) 이 시기가 지나면 한국에서 태어난 아기는 한국어에서 서로 다르게 처리되는 ㄱ/ㅋ/ㄲ을 구별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며 미국에서 태어난 아기는 킴과 김을 구별 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ㅅㅂ 그럼 뱃속에서부터 시작해야 된단 말이냐?? 하고 당혹하시는 분들도 있고 실제로도 아기가 뱃속에 있을때부터 영어 동화책을 들려주느니 하는 사례도 들어보았습니다만 진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태중의 아기는 우리처럼 공기에 노출되어있지 않고 물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우리가 공기중에서 듣는 것과 같은 사운드를 태중의 아기가 듣기를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듣는다고 해도 웅얼웅얼하는 정도로 들리겠지요. 물론 엄마의 말은 몸을 통해서 직접 전달 되긴 하겠습니다만... 하여간 보통 발화하고는 좀 다르겠지요.


일단 발음을 인식하지 못하면 발음하기도 좀 힘들긴 하겠습니다. 그치만 이 경우에도 절대 물리적인 이유(즉 구강 구조등)로 인해 발음을 못하는 건 아닙니다. 왜 영어 발음 때문에 물리적인 수술까지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부모 모두 한국인이더라도 아이가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서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경우가 많을 걸로 생각 됩니다. 이 경우 아이는 완벽하게 한국 사람의 구강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아무 지장 없습니다. ㄱ-;; 이론적으로 구강구조 때문에 발음을 못 하는 경우는 없는 거 아닌가요? 다만 모국어에서 그 발음을 안 쓰니까 점차 못 쓰게 될 뿐...


그래도 어쨌든 많이 노출 시키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지니신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거기에 대해서도 회의적입니다. 엄마 아빠가 모두 청각장애인이라서 말을 할 수 없는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의 사례가 있는데, 아이는 장애가 없었고 엄마 아빠는 고민끝에 아이에게 비디오를 많이 틀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렇지만 결과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쯤?에도 또래들에 비해서 어휘 및 문법에서 많이 떨어지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이 말은 그냥 무조건 영어 테이프를 틀어주고 비디오를 보여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아이가 모국어를 습득할 때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바로 엄마가 우쮸쮸쮸ㅉ 우리 **이 잘 했어요. 먹었어요? 아니에요? 맘마에요. 라고 몇 번 씩 되풀이 해주는 반응들입니다. 엄마가 아기에게만 사용하는 특이한 톤에 아기들은 좀 더 잘 반응한다고 하네요. 비디오는 이걸 해줄 수가 없죠.


모국어 '습득'을 지나서 '학습'에 관해서 생각해 봅시다. 일단 엄마가 미국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사실 모국어 처럼 습득하는 것은 어렵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영어는 따로 학습을 해야하는데 이 경우에도 일찍 시작할수록 좋은가? 대답은 글쎄요... 입니다. 갓태어난 아기는 죽었다 깨어나도 걸을 수 없습니다. 아기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까요? 밥을 잘 주고... 많이 재우면 됩니다. 그러면 언젠가 아기가 걷습니다. 뭔 개떡같은 소리냐면 3살때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되던 것이 7살에는 손쉽게 된다는 얘깁니다. 23살과 27살의 인지능력에는 별 차이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3살과 7살의 인지능력에는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문과인 나도 안다.. 제가 애는 안 키워봤지만 이 정도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3살에는 아무리 시켜도 이게 학습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 자체를 인식하기 힘든 반면 그래도 7살이 되면 앞에있는 선생님을 따라 한다든가, 손짓눈짓발짓으로 짐작한다든가, 규칙에 따라 게임에 참여한다든가, 노래를 부른다든가 하는 고등한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학습의 효율은 7살이 낫습니다. 단순히 아이에게 시간을 많이 벌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이라면, 글쎄요.


그 다음 어떻게 그렇게 저렇게 해서 하여간 아이가 10살이 되기 전에 완벽한 영어 발음을 습득했다고 칩시다. 그럼... 그걸로... 뭘... 하겠습니까... 제가 총체적으로 난감한 부분은 이 점입니다. 사실 해외에서 유학을 하고 왔다고 하더라도 어떤 면에서는 미국 거지보다 영어 못할 수도 있습니다. 거지는 좀 심했나... 좀 깎아서 어학연수를 좀 오래 갔다 왔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국 초등학생보다 완벽한 발음으로 영어를 말할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미국 초등학생이 대학입학 에세이를 쓰거나, 논문을 쓰거나, 회사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할 수는 없습니다. 요점은 영어, 특히 회화, 그중에서도 발음 자체를 잘하는 것이 꼭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영어가 필요한 분야는 수도 없는데 아무리 잘해도 10살에 배울 수 있는 외국어란 한계가 있습니다.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그 이상이고 그건 영어를 배운다고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님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그래도 기본인 영어가 안되면...' 이겠지만 저 위의 문제들은 사실 영어의 문제가 아니라 뭐 21세기가 요구한다는 사고력 창의력 따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영어가 되더라도...' 의 상황이 발생한다는 겁니다. 대학입학 에세이를 쓰거나, 논문을 쓰거나, 회사에서 프리젠테이션하는 것은 어차피 (영어 이외의)후천적인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정 수준의 독해 능력만 갖추면 되는 경우도 있고 동시통역 수준으로 말하기가 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사람마다 필요한 영어의 정도가 다른데 발음이 좋은 영어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믿을 건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좋은점이 있을까요? 좋은점 까지는 아니지만, 일단 "한국어도 제대로 못하는 애를 영어를 가르쳐서 무엇 하느냐."라는 얘기는 그다지 유효하진 않습니다. 한 언어의 틀이 완전히 잡힐 필요는 없다고 하네요. 일단 이중언어 환경에 노출되어서 자란다면 어릴 때 약간 혼란을 겪을 수는 있지만 결국 훌륭하게 이중언어 화자로 자란다고 합니다. 즉 한 언어의 각이 잡히고 모국어와 외국어를 구분할 수 있는 인지능력이 생길때 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어릴 때 두 개의 언어를 습득한 이중언어 화자의 경우와 철들고 외국어로서 습득한 화자의 경우 뇌에서도 처리하는 영역이 차이난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두 개의 언어를 모두 모국어 처럼 구사하는 이중언어 화자의 경우 두 언어 모두 비슷한 뇌부위에서 처리하는 반면 외국어로서 (유창한 정도까지) 습득한 화자의 경우 모국어와 외국어 처리하는 영역이 좀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어떤 시기를 지나서는 모국어 조차 습득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 말은 뭐냐하면 사실 언어를 습득할 때는 어릴 때가 유리하다는 얘기지요. 그렇지만 그건 '습득'의 얘기고... '학습'의 경우는 다르다고 저는 여전히 생각합니다. 그리고 10살에 필요한 영어와 20살에 필요한 영어는 다릅니다. 10살에 영어를 잘했다고 해서 그걸로 30살까지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들 '10살부터 처지기 시작하면...'이 걱정의 핵심이겠지만... 이렇게까지 전국민이 영어, 그것도 발음에 미쳐돌아갈 필요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 줄 요약
언어를 어릴 때 습득하면 이점이 있음
그러나 엄마 영어 아빠 한국어 정도의 상황이 조성된 게 아니라면 자연스러운 '습득'을 기대하긴... 좀...
영어 유치원만 보내서 되는 문제가 아님. 현재의 조기 교육은 국가적 낭비와 광기인듯.
 

p.s. 아기들이 실제로 말을 시작하기 전에도 모국어과 관련된 발음 및 최소한의 문장 구조를 구별한다는 연구가 좀 더 있습니다. 말도 못하는 애들을 데리고 실험을 하다니 참 대단하다고 생각되는데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뽀로로가 뿡뿡이를 간지럽혀요 vs 뿡뿡이가 뽀로로를 간지럽혀요 와 같은 문장을 들려주고 두 가지 화면을 다 보여줍니다. 그럼 아기들이 문장에 맞는 내용의 화면을 오래 쳐다봅니다. 와우... 원래는 세서미 스트리트의 쿠키 몬스터와 ... 누구였더라 여튼 그런 애들을 보여주면서 했던 실험이고 국내에서 모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재현한 것을 봤습니다. 아기들이 말을 못해도 주변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머리속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p.s.2. 유학갔을 때는 아무도 내 발음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갔다가 오자 다들 내 발음을 못 알아듣겠다며 뭐라고 했다- 고 한탄하시던 교수님이 생각납니다.

p.s.3. 사실 저 위에서 길게'이 '영어가 되더라도...' 문제가 다 해결 되는 것은 아니라고 써놓았습니다만 그것이 영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되진 않습니다. (이럴수가!) 또,  이런 사회 현상에 대고 '나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었는데'라고 하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네요. 저야 저렇게 까지 하지 않았어도 지금 떵떵거리고... 살지는... 못하지만 여튼 그럭저럭 사년제 대학 나왔습니다만 그건 그때고요. 이 세대에는 이랬던 룰이 다음 세대에는 적용이 되지 않고 있으니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다같이 안하는 겁니다만 이건 가능성이 없는것 같고요.  ...21세기에는 영어도 잘해야 하고 사고력과 창의력 문제 해결력을 갖춘 인재가 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0대 청소년 및 어린이 여러분은 저를 까지 마세요. 여러분은 힘든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2010/08/11 21:27 2010/08/11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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